[페이션트 스토리] 두통과 함께하는 사람들 박기한 환우
두통 인식 낮아 진단 늦어…진단 늦을수록 만성화 위험↑
두통으로 자주 힘들면 간과하지 말고 신경과 진료 봐야
급여 신약 있지만 조건 까다로워 환자 대부분 급여 포기
신약 급여 조건 개선해 난치성 두통 환자 치료권 보장을

두통은 아주 흔하게 우리 몸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래서 두통을 적극적 대처가 필요한 병으로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두통은 종류가 꽤 많고 양상도 굉장히 다양하며 사람마다 통증 역치마저 천차만별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두통이건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를 복용하고 한숨 자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런 방법으로 해결되는 두통도 있지만 해결되지 않는 두통도 많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통제 복용량을 계속 늘려가며 고통을 견디는 것이 현실이다. 

'두통과 함께 하는 사람들' 로고. 이미지 제공=박기한
'두통과 함께 하는 사람들' 로고. 이미지 제공=박기한

이런 두통 중에는 두통 자체가 병인 편두통, 군발두통 같은 난치성두통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데, 지금 나를 괴롭히는 두통이 그 자체로 '병'이라는 사실은 거의 대부분 쉽게 간과된다. 대표적으로 편두통 같은 경우에는 초기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굉장히 심각한 형태로 병의 양상이 바뀌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같은 현실을 모른다. 지난 2011년 여름부터 심각한 편두통을 앓아온 박기한 씨(26세)가 올해 2월 두통커뮤니티 '두통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오픈한 이유의 하나가 여기있다. 

박기한 씨는 "두통에 대한 낮은 인식으로 인해 국내 두통 환자들이 병원에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면서 진단이 늦은 것이 현실이다. 일찍 진단을 받아 치료를 잘 하면 두통의 빈도가 빈번해지거나 두통이 악화될 우려가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 달에 두통 일수가 10일이 넘는 사람들이 진단까지 평균 10년이 걸린다고 보고될 정도"라며 "두통으로 자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경과 전문의가 있는 동네의원이라도 꼭 가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올해 2월 두통커뮤니티 '두통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오픈한 박기한 환우 
올해 2월 두통커뮤니티 '두통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오픈한 박기한 환우 

중학교 2학년생일 때 그는 메니에르병과 함께 심장 박동에 따라 머리가 욱씬거리는 양상의 발작성 두통이 시작됐는데, 1년 반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병명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는 나중에야 자신이 편두통 환자 중 그나마 빠르게 진단받은 '운 좋은 환자'였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의 편두통 증상이 심각하지 않아 진단까지 1년 반이 걸린 게 결코 아니다. 박 씨는 "심장이 뛸 때마다 머리가 쪼이듯 아프고 눈이 빠질 것 같은 통증에 시달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약을 먹어도 두통이 잘 조절되지 않아 수업 중 교실을 벗어난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고, 두통이 너무 심해 병원을 오가느라 학교 출결을 채우기도 어려웠다. 박기한 씨는 "약을 먹으면 조금 듣는 것 같은데 완전히 듣는 느낌은 아니었다"며 편두통이 잘 조절되지 않는 상태에서 수시로 병원을 다니며 겨우 중학교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아 일찍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편두통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또 그간 그는 두통이 너무 심해 극단적 시도를 할만큼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극심한 편두통 탓에 회사를 다닐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그는 '살기 위해' 보톡스 등 두통에 시도되는 온갖 치료를 했었다. 그런 치료의 대부분이 건강보험 급여 치료가 아니었기에 경제적 어려움이 컸고, 그럼에도 전혀 차도가 없어 극단적 시도 외에 답을 찾지 못했었다. 박 씨는 "그땐 일도 못 하고 삶을 이어나갈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며 다행히 신약을 만나 삶이 바뀔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신약이 바로 2019년 국내 도입된 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타이드(Calcitonin Gene-Related Peptide, CGRP) 억제제 앰겔러티(성분명 갈카네주맙)다. 2020년 3월부터 박기한 씨는 비급여로 앰겔러티 주사치료를 시작하면서 극적이라 할만큼 편두통 상태가 개선됐다. 그는 "앰겔러티 주사치료 전에는 한 달에 20일 가까이 편두통 발작이 있었는데, 앰겔러티 치료 이후에는 약 3주 동안 3~4일 정도로 줄어 직장생활을 다시 할 수 있게 됐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세브란스병원에서 그는 앰겔러티로 편두통 조절이 잘 돼 매달 한 대씩 맞아야 하는 약 50만원의 앰겔러티 투약 간격을 5~6주로 차츰 늘리는 시도도 했었다. 하지만 앰겔러티 투약 1년 6개월이 지나자 치료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박기한 씨는 "앰겔러티는 오래 맞으면 효과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1년 6개월 가까이 쓰자 위험 신호가 왔다"며 "항상 여름에 더 아팠는데, 그쯤 여러가지가 겹치면서 두통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다행히 그는 주치의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주민경 교수(대한두통학회장)의 도움으로 2021년 7월 국내 허가된 또 다른 CGRP억제제 아조비(성분명 프레마네주맙)로 그해 10월 약을 변경하면서 다시 편두통을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3년 12월 다시 편두통이 악화되면서 아조비에서 앰겔러티로 약을 또 변경했고, 현재는 예고 없이 편두통 발작이 찾아올 때는 트립타민(Tryptamine) 계열의 약을 먹으면서 6주마다 편두통예방약 앰겔러티를 주사하고 있다.  

그간 난치성두통 치료환경에도 변화가 일었다. 앰겔러티와 아조비에 보험 급여가 각각 2022년 9월, 2023년 1월 이뤄진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하지만 박기한 씨는 난치성두통 치료환경이 여전히 열악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가 있다. 앰겔러티, 아비조 같은 신약에 급여가 이뤄졌지만, 실제 난치성두통 환자들이 급여 혜택을 보기는 여전히 어려운 현실 탓이다. 그는 "CGRP억제제의 급여 조건이 말도 안 되게 까다로워 대부분의 환자가 100% 치료비를 부담하는 비급여로 치료한다"고 짚었다.

그렇다면 얼마나 CGRP억제제의 급여 기준이 까다롭게 설정된 것일까? 먼저 앰겔러티와 아조비의 급여 기준은 국제두통질환분류(ICHD-3) 진단기준에 부합하는 18세 이상 만성 편두통 환자 예방요법으로 국한돼 있다. 이는 박기한 씨처럼 중학생 때 발병한 편두통 환자에게는 CGRP억제제를 쓸 수 없다는 말이다. CGRP억제제의 급여 투여기간도 최대 12개월로 제한돼 있으며, CGRP억제제의 교체투여도 인정되지 않는다. 이 같은 기준은 시작에 불과하다.  

박기한 환우
박기한 환우

두 약제는 최소 1년 이상 편두통 병력이 있고 투여 전 최소 6개월 이상 월 두통일수가 15일 이상이면서 그 중 한 달에 최소 8일 이상 편두통형 두통인 환자이며, CGRP억제제 투여 전 편두통장애척도 'MIDAS' 21점 이상(3개월 간 21일 이상 편두통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 또는 두통영향검사 'HIT-6' 60점 이상(두통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 36~78점 척도 검사로 60점 이상은 심각한 두통 영향으로 분류됨)인 환자이자, 최근 1년 이내 3종 이상의 편두통예방약에서 치료 실패를 보인 환자로 각 약제의 최대 내약 용량으로 적어도 8주 이상 투여해도 월 편두통 일수가 50% 이상 감소하지 않거나 부작용·금기로 다른 편두통 예방약제를 사용할 수 없는 환자에게만 급여로 쓸 수 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여기에 더해 CGRP억제제 투여기간 등의 확인을 위해 환자는 ‘투약일지’를 직접 써야 한다. 또 병원이 환자의 두통일지를 관리하면서 최초 투여 시 환자에 대한 객관적 자료와 지속투여 시 3개월마다 반응평가에 대한 객관적 자료(약제투여 과거력, 진료기록부, 두통일기 등)를 계속 제출해야 한다. 박 씨는 "약에 대한 반응평가에 필요한 객관적 자료로 두통일기를 환자가 병원에 제출하면 병원에서 모두 업데이트 해야 하기 때문에 개원가는 CGRP억제제를 처방하지 않는다"고 현실을 짚었다.  

이어 박기한 씨는 "무엇보다 급여 치료를 받기 위해 편두통 환자는 최근 1년 이내 3종 이상의 편두통예방약을 각각 8주 동안 최대 내약 용량으로 견뎌야 하는데, 각 약들의 용량을 최대로 올리면 필연적으로 부작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이 규정은 3종의 약제에 치료가 안 되는 걸 증명하기 위해 환자에게 6개월을 고생하라는 의미"라고 울분을 토했다. 현재의 두통 치료 급여 기준이 과다하는 것은 난치성두통 환자들만의 생각이 아니다.

대한두통학회도 올해 1월 기자간담회에서 CGRP억제제의 과도한 급여 기준 탓에 약 10%의 환자만 급여치료를 받는 현실을 지적하며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기한 씨가 '두통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든 또 다른 이유도 여기 있다. 두통 치료환경을 바꾸기 위해 환우들도 의료진과 같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보는 까닭이다. 박 씨는 CGRP억제제 급여 문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직접 개선 요구도 하고 2022년엔 국회 국민동의청원도 시도하는 등 현실을 바꿔보고자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박기한 씨는 "두통학회에서 열심히 이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환자들이 같이 목소리를 내 더 큰 목소리로 말해야 치료환경을 바꿀 수 있다. 두통이 심해지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삶에서 무엇인가를 포기하거나 기회를 놓치게 되는 일을 겪는다. 앞으로 나올 치료법을 통해 난치성두통 환우들이 덜 고생하며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싶다"며 두통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함께 치료환경 개선에 목소리를 낼 다양한 난치성두통 환우들을 '두통과 함께하는 사람들'에서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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